무비나 (21세, 러시아, 고등학교 1학년 중퇴)
저는 열세 살 때 엄마, 아빠,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 한국에 왔어요. 6학년으로 편입해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이 모두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동생들은 전학이 쉽게 됐는데, 저는 받아주는 고등학교가 없어서 학업을 중단했어요. 검정고시라도 치고 싶었지만, 대구에 사는 동안 미등록이 되는 바람에 검정고시도 칠 수 없었어요. 얼마 전 동생들과 부모님은 체류자격을 신청했어요. 저도 신청하고 싶었지만 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자도 아니라서 못 한대요. 혹시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신청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출입국에서는 그래도 안 된다며 저더러 이제 성인이니까 부모랑 같이 살려고 하지 말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학교를 안 다니는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풀스텍 개발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어요.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살면서 고등학교도 마치고, 대학도 다니고, IT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90일 이상 체류하려면 ‘외국인등록’을 해야 합니다. 외국인등록은 한국인으로 치면 주민등록과 같은 것으로, 외국인등록을 하면 부여받는 외국인등록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로 신분 증명과 본인인증에 사용됩니다.
하지만 외국인등록은 주민등록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외국인등록을 하려면 90일 이상 장기체류할 수 있는 ‘체류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흔히 비자라고 부릅니다. 둘째, 한 번 등록을 하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 유효 기간이 끝나기 전에 비자를 갱신하거나, 좀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다른 비자로 변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성년자들은 독립적인 비자를 발급받지 못합니다. 부모가 먼저 비자를 받고, 거기에 수반되는 ‘동거’나 ‘동반’ 같은 비자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비자가 없거나 만료된 채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으면, 그 자녀는 어쩔 수 없이 ‘미등록 이주아동’이 됩니다.
이주아동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주’라는 표현이 안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등록 이주민인 부모가 한국에서 낳은 아동들은 본인이 이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의 아동까지 포함하기 위해 최근에는 ‘이주배경’ 아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아동’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아동, 청소년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된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미등록 상태로 아동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편의상 ‘아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Let us Dream 캠페인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은 부모와 함께 한국으로 이주했다가 미등록으로 살게 된 이주아동 뿐 아니라, 국내에서 태어나 이주한 경험이 없는 아동, 현재는 더 이상 아동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기 때문에 본인도 미등록인 상태로 한국에서 아동기를 보낸 사람들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한 것이라면 ‘출입국 기록’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등록을 하지 않아도 숫자가 잡힙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과거에 외국인등록을 한 적이 있다면 현재는 미등록 상태이더라도 역시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외국인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몇 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외국인등록을 한 이주민 중 아동의 비율을 미등록 이주민 수에 적용해 추산해볼 수는 있지만 미등록 이주민이 등록 이주민과 비슷한 비율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이미 성인이 된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이러한 추산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미등록 이주아동을 만나고 지원해온 활동가들은 전국적으로 20,000명 정도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외국인등록번호 없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3,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미취학 아동, 학교 밖 아동, 그리고 이미 성인이 된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최소한 그 두 세배는 되지 않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공적인 절차에서 주민등록번호 또는 외국인등록번호를 통한 신분 증명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외국인등록번호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등록번호를 적어야 하는 모든 상황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도,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도,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학교에 다닐 수는 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도 보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도 2010년부터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이라는 지침을 통해 재학 중인 학생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유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더라도 교내 외 활동 중 외국인등록번호를 요구받는 다양한 상황에서는 배제됩니다. 체험학습을 가기 위한 안전보험 가입도, 전국 규모의 경시대회나 체육대회 참가도, 자원봉사포털 사이트에 봉사실적을 올리는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단속되면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 세대는 본인의 선택으로 이주를 했지만 아동들은 아닙니다. 아무도 그렇지 못하듯 이주아동들이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뱃속의 태아가 “엄마,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해서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두 살짜리 아기가 “아빠, 저는 한국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해서 이주를 한 것도 아닙니다. 이주아동들은 그저 부모가 한국에서 낳았으니까, 또는 어렸을 때 부모가 한국으로 데리고 왔으니까 여기에서 살게 된 것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주아동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낯선 나라로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미등록 이주아동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혔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평생을 한국이 ‘우리나라’라고 배우며 자란 이주아동들에게 자기 나라로 가라고 떠미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이 캠페인은 이주아동들에게 한국 국적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아동들, 청소년들, 청년들에게만큼은 계속해서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달라는 것입니다.
있습니다. 2021년 4월, 법무부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구제대책은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계속해서 국내에 체류했고,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대상 아동의 부모에게는 범칙금 납부를 조건으로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임시 체류자격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다만 법무부는 이 구제대책을 2025년 2월 28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구제대책 발표 이후 이주아동을 지원하던 여러 단체들에서는 국내 출생, 15년 이상 체류라는 신청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시행기간이 한시적이며, 부모에게 부과하는 범칙금이 너무 과도해 소수의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결국 법무부는 2022년 1월, 신청 조건을 완화하고 범칙금 추가 감면을 골자로 한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을 구제대책의 개선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구제대책 개선안을 통해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는 아동의 국내 체류기간은 15년 이상에서 국내에서 출생했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한 경우는 6년 이상, 영유아기를 지나 입국한 경우는 7년 이상으로 줄었습니다. 범칙금 납부 능력이 부족한 부모들에게는 범칙금을 감면해주겠다는 내용도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제대책 개선안도 2025년 3월 31일까지라는 한시적 시행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2024년 8월 말까지 법무부의 구제대책을 통해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이주아동은 총 962명입니다. 20,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비해서 너무 적은 숫자일 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000여 명의 미등록 이주아동들만 따져보아도 삼분의 일에 미치지 못하는 숫자입니다. 지금도 체류기간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감면된 범칙금도 내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또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는 바람에 체류자격을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나라는 꽤 있습니다. 아동기에 입국해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했고, 공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일단 체류자격을 받으면 최종적으로 영주권이나 국적 취득도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비자발적 불법(innocent illegal)’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아동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류자격 없이 그 나라에 살게 된 것이니만큼 무조건 추방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각 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정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국
18세 미만 아동이 7년 이상 거주한 경우, 18~25세 사이의 청년이 생애 절반 이상을 거주한 경우 체류자격을 줍니다. 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영주권 신청도 가능합니다.
② 독일
8년 이상 거주했고, 4년 이상 독일의 교육기관에 재학했고, 독일 사회에 통합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이 21세 이전에 신청하면 임시 체류 자격을 줍니다. 이후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③ 프랑스
18세 미만의 아동은 아무 조건 없이 체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18세 이후에 적절한 체류 자격(유학, 취업 등)을 가질 수 없으면, 우선 임시 체류 자격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임시 체류 자격은 계속 연장할 수 있고 이후에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임시 체류 자격 신청 요건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10세 이후 8년 이상 연속 거주했고 5년 이상 프랑스에서 교육 받은 경우입니다. 16~21세 사이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둘째, 13세 이후 프랑스에서 최소 한 명의 부모와 상시 거주한 경우입니다. 18세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셋째, 기타 가족 관계나 프랑스 사회와의 통합 정도를 고려했을 때 필요한 경우에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넷째, 16세부터 프랑스 아동 보호 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출신국에서의 가족 관계가 약하고, 보호 기관이 아동의 적합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18세 이전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 함께 살 수 없는 경우도 고려한 제도입니다.
④ 일본
일본에서 태어났거나, 영유아기에 일본에 왔거나, 일본에서 초중등 교육을 이수한 경우 ‘재류특별허가’라는 자격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만으로 바로 체류자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소송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무조건 부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재류특별허가를 받으면 이후 정주 체류자격으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⑤ 미국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아동기 입국자를 위한 유예 조치)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DACA는 16세 이전에 미국에 입국했고, 5년 이상 거주했고, 행정명령 발표 시점 기준 31세 미만인 사람으로 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을 인정받았거나, 미군으로 복무한 청년들에게 추방을 당하지 않고 학업과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치입니다. 일단 DACA로 구제받은 뒤에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장기체류가 가능한 체류자격으로 변경이 가능하며, 이후 영주권이나 시민권도 취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DREAM 법안(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은 미등록 상태로 미국에 입국하거나 체류 중인 아동·청소년 중 중·고등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안된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2001년에 처음 발의된 이후 여러 차례 수정 및 재발의를 거쳤으나, 아직 법으로 제정되지는 못했습니다.
DREAM 법안은 미등록 이주 청소년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졸업학력 인증(GED)을 취득한 후,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조건부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왔지만 체류 자격을 정리할 방법이 없는 "드리머(DREAMers)"로 불리는 아동들이 주요 대상입니다. 이 법안은 일정 기간이 지나 추가 요건을 충족하면 영구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시민권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DREAM 법안이 수년간 입법되지 못하자,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강제 추방을 유예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외국인 아동 추방 유예(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줄여서 DACA라 불리며, 법적 체류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드리머들에게 2년간의 추방 유예와 취업 허가를 제공합니다. 다만 이 추방 유예를 계속 갱신할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체류자격으로 변경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살다보니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혔고, 한국을 ‘우리나라’로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한국은 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허용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해 계속해서 한국에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아동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이들의 교육과 사회통합에 이미 많은 노력을 쏟아부은 한국 사회에도 보상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